최우수 록-음반
ABTB [daydream]
거친 쇳소리들의 마찰인 록도 오로라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기타 멜로디의 융단은 장대한 수평선을 수놓고 규칙적 사이클로 넘실거린다. 여기에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리듬 폭포와 탄알처럼 후드득 쏟아지는 각진 자음들의 난장. 하드록과 메탈, 그런지의 계보 위로 펄떡대는 한국적 성음은, 극단주의에 찌든 한국사회를 크로키처럼 낚아챈다. 빨려 들어간다. 카프카 '변신'의 등껍질을 보는 쇼크처럼. 보랏빛 휘장(커버)을 두른 이 극사실주의 화풍의 대서사시로... 힙합과 댄스가 득세하는 시대에 록은 사멸할 거라 한다. 기우(杞憂)다. 믿고 싶어진다. '여전히 세계엔 록으로 작동하는 '만유인력(Attraction)'이 있다.'
선정위원 권익도
최우수 록-노래
ABTB 'daydream (feat. 신윤철)'
이명준(소설 <광장>의 주인공)과 그레고리 잠자(소설 <변신>의 주인공), 아서 플렉(영화 <조커>의 주인공)이 처한 고립과 번민은 이 곡의 주인공이 마주한 백일몽에 그대로 대입되었다. 그리고 “끝없이 드넓은 적막한 공간 속”에서 거칠게 파열하는 소리, 게스트(신윤철)의 등장을 눈치챌 수 없을만치 완벽한 연주의 합, 반으로 쪼개진 두 얼굴의 템포는 “의식을 잃은 채 흐름을 따라서 멀어지”는 그 몽상의 흔적을 천천히 반추한다. 'daydream'은 지금 한국록이 오를 수 있는 혹은 들려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지, 단호한 선언이다.
선정위원 김성대
최우수 모던록-음반
조동익 [푸른 베개]
자신만의 음악 너머를 향해 오롯이 걸어온 조동익의 2집 [푸른 베개]는 정서적 가치와 음악적 기품이 번뜩이는 음반이다. 보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들, 남겨진 이와 떠나간 이들의 기운까지 두루 내포한 이 작품은 낮게 가라앉은 몽환의 질감이 굵은 선을 그리면서 정연한 음의 질서로 이어져 완성되었다. 느리지만 앞을 향하며 묵묵히 호흡하겠다는 앨범의 주제는 여러 단으로 나뉘어 기억에 대한 애상(哀想)을 전하기도 한다. 또한 서로를 보듬고 껴안으며 겹쳐져 흐르는 수록곡들은 청자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정감마저 애틋하게 어루만진다. 감상의 큰 고리 안에서 모든 수록곡이 매끄럽게 연결된 이 작품은 음악적으로 모던록이라는 장르가 지닌 폭넓은 결과 다채로운 겹을 지녔다.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은 어떤날의 동경을 지나 조동익 음악의 숭고한 자락을 보여준 [푸른 베개]를 올해의 모던록 음반으로 기록한다.
선정위원 고종석
최우수 모던록-노래
이날치 '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는 가히 사회 현상이었다. 이를 빼고 2020년의 음악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범 내려온다’에 몸을 들썩였다. 함께 무대에 올라 춤을 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신드롬에 불을 지폈다면, 반복 감상을 유도한 건 단연 곡 자체의 매력이다. 리듬 위주의 정교한 짜임새, 단순하면서도 귀에 잘 들어오는 노래,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듣는 재미를 높였다. 반복되는 프레이즈 ‘범 내려온다’의 중독성은 말할 것도 없다. 판소리에 뉴웨이브 작법을 접목해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획득한 수작.
선정위원 정민재
최우수 메탈&하드코어-음반
램넌츠 오브 더 폴른(Remnants of the Fallen) [All the Wounded and Broken]
압도적이다. 해외의 트렌드와 함께하면서도 그들 사이에서도 돋보일 만큼 압도적인 음악이다. 메탈코어라는 기본적인 틀 안에서 프로그레시브 메탈 못지않은 정교한 구성을 갖추었다. 빼어난 멜로디를 극적으로 표현해내는 연주와 보컬, 그리고 더 복잡하고 정교해진 연주를 ‘서사’란 단어가 어울리게끔 완벽한 구성으로 더 빛나게 해준다. 여기에 앨범 전체에서 묻어나는 정서적인 부분까지도 인상적이다. 램넌츠 오브 더 폴른은 과거보다 더 발전했고, 발전의 끝이 어디일지 이 완벽에 가까운 앨범을 두고도 더 기대하게 한다.
선정위원 김학선
최우수 팝-음반
백예린(Yerin Baek) [Every letter I sent you.]
백예린은 자신의 언어가 담긴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 줄 아는 음악가다. “You don’t have to open up wide, But I want to intimate(마음을 활짝 열 필요는 없지만, 전 가까워지고 싶어요).” ‘Popo (How deep is our love?)’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향해 마음의 창을 열어달라고 말하면서 앨범 내내 소네트를 읊는 이 간결하지만 아름다운 음악가의 작은 세계는 올해도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곡마다 가벼운 변주를 주어가며 앨범을 만든 노력에 이 한 마디로 화답한다. “You’ll never know how much your voice attracts me(당신은 당신의 목소리가 날 얼마나 끌리게 하는지 모를 거예요).”
선정위원 박희아
최우수 팝-노래
방탄소년단(BTS) 'Dynamite'
‘Dynamite’는 방탄소년단이 발표한 싱글 중 가장 미국 팝 스타일에 가까운 곡이다. 기타와 베이스로 그루브를 만드는 고전적인 디스코 스타일에 충실하면서 현대적인 면모도 놓치지 않는 세련된 편곡은 ‘Get Lucky’, ‘Uptown Funk’처럼 꾸준히 빌보드차트에서 사랑받아온 스타일이다. 이러한 디스코를 방탄소년단의 바이브로 명민하게 재해석한 결과물은 가히 올해의 팝이라 할 만큼 위력적이었고, 우리에게 가요 역사상 첫 빌보드 싱글차트 1위라는 쾌거를 선물했다.
선정위원 권석정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음반
모과(Mogwaa) [Open Mind]
빈티지 신디사이저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1980~90년대 전자 음악의 시대에 구애 받지 않는 가능성을 펼쳐보였다. 자칫 둔탁할 수 있는 신디사이저와 드럼 머신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생동감 넘치는 댄스 음악으로 만들어낸 음악적 표현력이 뛰어나다. 그루브, 멜로디, 사운드 디자인 등 여러 방면이 고루 뛰어난 균형 잡힌 수작이다.
선정위원 이대화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노래
아슬(Aseul) 'Bye Bye Summer'
‘Bye Bye Summer‘는 비틀거린다. 아슬의 목소리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그 목소리에 덧붙여진 사운드들은 나뭇잎 사이로 형체를 잡지 못하고 스며드는 햇살처럼 나풀거린다. 그렇지만 그 소리들 사이에서 교차하는 허무와 낙관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순간을 스치고 지나가는 음률이, 마음 한 구석에 이 곡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모든 이가 경험했을 알 수 없는 감정을 건드린다. 이제까지의 그 어떤 레코딩보다도 흐트려 놓은 소리를 투사하는 아슬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오직 그러한 구성만이 짚어낼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늦여름의 선잠처럼 전해 온다.
선정위원 정구원
최우수 랩&힙합-음반
Khundi Panda [가로사옥]
[가로사옥]의 미덕은 ‘디테일’이다. 랩 가사의 고유한 매력을 십분 활용해 개인과 힙합 씬 내부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많은 양의 단어를 빠르게 뱉어내면서도 빼곡하게 배치한 라임과 유려한 플로우로 청각적 쾌감까지 놓치지 않는다. 마치 그 순간에 있었던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러 프로듀서가 참여해 완성한 프로덕션은 장르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강한 전자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운드로 세련미를 더했다. 장르적으로 뛰어난 앨범이 많이 쏟아져나왔던 2020년, 쿤디판다는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무기로 삼아 또 한 번 뛰어난 음악적 성취를 이뤄냈다.
선정위원 황두하
최우수 랩&힙합-노래
스월비(Swervy) 'Mama Lisa'
해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힙합에서 엄마의 존재는 대부분 랩 가사 속 자수성가 서사의 당위로 쓰인다. 'Mama Lisa'의 전복적 가치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10대 여성의 시선으로 스월비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 엿을 날린다. 하지만, 이것이 뻔한 객기로 읽히지 않는 것은 "우리 엄만 말해 나를 보고 뺨을 한 대 맞음 목을 뽑고 와" 같은 가사로 이전 세대의 여성, 즉 '엄마'와 연대하며 짜릿한 여성 서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를 호전적이고 위악적인 태도로 제대로 구현한 스월비의 놀라운 퍼포먼스는 이른바 '센' 캐릭터를 내세우며 각광받은 여느 래퍼들의 것과는 수준이 다르다. 단연, 2020년 가장 인상적인 랩/힙합 트랙이다.
선정위원 남성훈
최우수 알앤비&소울-음반
선우정아(sunwoojunga) [Serenade]
곁에 두고 하루가 멀다 하고 듣는 노래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이렇다. 통속적이고 대중적이지만 오랫동안 기억되고 회자될만한 선율과 노랫말로 지어진 노래. 냉소적이고 자조적이지만 위로를 느끼는 노래. 관습을 깨버리는 짜릿함과 동시에 클리셰로 충만한 편안함을 주는 노래. 상반된 감정선을 넘나드는 위태로운 매력을 품은 노래들이다. 선우정아의 정규 3집 [Serenade]에 실려있는 16곡은 위태로운 매력으로 얽혀있는 하나의 큰 노래다. 물론 이런 완성도는 한 곡 한 곡의 만듦새의 바탕을 둬야 가능하다. 이 상은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선우정아 그 자체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 뿌듯하다고 그래서 재미있었고, 즐거웠고, 시원했다고 그리고 이 음반으로 받은 위로가 듣는 대중에게도 잘 전해지기 바란다'는 그녀의 바람에 대한 답이다. 아울러 2집 [It’s Okay, Dear]로 11회 한국대중음악상 2개 부문에서 수상한 이후 한국대중음악선정위원회가 선우정아의 새로운 성과에 대해서 대중들과 함께 응답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선정위원 이광훈
최우수 알앤비&소울-노래
추다혜차지스 '리츄얼댄스'
‘장르 간의 융합’은 2020년 대중음악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무가와 흑인음악이 만난 추다혜차지스의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장르 간의 융합’이 낳은, 생경하고도 뛰어난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리추얼댄스'는 특별하다. 힙합의 샘플링과 루핑이 떠오르는 간결하고 펑키한 연주 위로 추다혜의 무가가 얹어지는 순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는 못 배길 환상적인 그루브의 향연이다. 펑크(Funk)와 ‘90년대 재즈 랩, 그리고 무속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벌어지는 난장은 2020년 가장 황홀한 음악적 경험이었다.
선정위원 황두하
최우수 포크-음반
정밀아 [청파소나타]
정밀아의 이 3집은 포크 장르의 전통성과 양식미, 존재가치를 지니면서도 다분히 새로운 면도 놓치지 않는다. 가볍게 술 한 잔 하며 앞에서 전해 듣는 듯한, 그가 사는 동네와 세상이야기 그리고 살짝 보여주는 휴대전화 속에 찍어둔 추억들의 감성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차분히 듣기 좋은 목소리로 전하는 2020년 한 해의 희로애락에 같이 웃고, 화도 내고 울기도 하며 공감하면서 나의 일들처럼 시간이 흐른다. 음악은 기본이고 디자인 등까지 거의 혼자 해낸 이 수작은 2020년뿐만 아니라, 21세기 이후 20년간의 포크 걸작 중 하나로도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선정위원 성우진
최우수 포크-노래
정밀아 '서울역에서 출발'
정밀아의 '서울역에서 출발'은 고향집에 내려왔던 딸이 서울로 돌아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제 몇 시에 도착했어. 다행히 금방 왔어.”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의 형태이지만 그 안에는 처음 상경하던 날에 대한 감상, 오래 살아도 낯설게 보이는 건물의 모습 등이 세밀하게 포착되어 있다. 소소하고 구체적인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나와 타인의 세계를 상상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 이 노래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정위원 최다은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재즈 음반
말로 [송창식 송북]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와 싱어송라이터 송창식은 세대도 장르도 다르지만 그들의 음악에는 전형성을 벗어난 도전정신이 존재한다. 송창식은 가요 안에서 다양한 장르와 독창적인 스타일을 틔워냈고, 말로는 한국적 정서와 어법으로 노래한 재즈를 선보여왔다. 그동안 'K-스탠더드’를 작업해온 말로는 송창식의 노래 22곡을 재해석하며 작곡가, 작사가, 보컬리스트, 스타일리스트 송창식을 다각도에서 재조명했다. 자신만의 목소리로 노래하면서도 원곡자의 음악을 선명하게 드러낸 이 작업은, 2020년 한국 재즈를 빛낸 결과물로 기록되었다.
선정위원 안민용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크로스오버 음반
이날치 [수궁가]
국악 크로스오버가 수도 없이 시도되었고, 적지 않은 수가 호평을 끌어냈음에도 대중들의 가시권에 근접한 프로젝트가 극소수였던 건, 음악적 완성도, 새로운 시도라는 의미의 수준을 넘어선 직관적 감상이라는 성취까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수궁가’에 대중음악의 요소를 더한 이날치의 음악은 어떨까.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대인의 감각을 자극하는 리듬과 그루브가 감상자를 엄습한다. 이 위에 ‘수궁가’의 대목들이 얹히지만, 어떠한 이질감이나 물리적 거리감을 느낄 틈 없는 찰떡같은 조화가 펼쳐진다. 명백한 크로스오버 음악이지만, 이에 가두어서 설명하지 않게 한다. 새로운 판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소리다.
선정위원 류희성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최우수 연주
서수진 [COLORIST]
드러머 서수진의 컬러리스 트리오 라인업이 갖는 장점, 혹은 특징은 세팅해둔 음악적 콘셉트를 과함 없이 적절한 범주 내에서 응집력 있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으레 좋은 연주라고 하면 화려하고 다채로운 테크닉의 향연을 연상하곤 하는데, 그런 부분 못지않게 빈 곳도 적절히 아우르면서 음악의 네러티브를 만들고 스토리를 이어나갈 줄 아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서수진은 그 점을 이전 쿼텟에서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고 이번 컬러리스 트리오에서 한층 더 성공적으로 레벨 업 시켜냈다. 전체 곡의 다양한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멤버들의 연주 밸런스를 아주 잘 이뤄낸 그 점이 연주의 측면에서 본작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선정위원 김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