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 케이팝-음반
청하 [Querencia]
프로듀스 101으로 데뷔, 걸그룹 I.O.I를 거쳐 솔로 가수로 데뷔하기까지 우리는 청하의 성장을 지켜봐왔다. 트로피컬 팝 댄스 장르를 꾸준히 이어갈 것 같았던 그녀는 ‘벌써 12시’를 기점으로 공주가 아닌 왕자로, 히어로이기보단 난장을 부리는 독립적인 빌런이 되기를 택한다. [Querencia] 앨범은 청하의 정규 1집이자 앞으로 그녀가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지에 대한 선포다. ‘내 맘을 알아달라던’ 소녀는 케이팝을 대표하는 ‘디바’로 재탄생하는 서사를 써간다. 케이팝의 특징은 모든 장르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하는 라틴팝, 하우스, 레게, 보깅, 컨템퍼러리 팝 등 다채로운 장르를 시도하여 4개의 챕터, 21곡 이란 엄청난 볼륨을 1집에 담아냈다. 이 앨범은 케이팝의 현재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청하라는 아티스트의 탄생 서막이자 공격적으로 문을 열고 폭주하는 SIDE A의 bicycle로 시작. 다양한 컬레버레이션과 감각적이고 목적 지향적 배치가 돋보이는 SIDE B, C를 지나, 차분하게 안식처(Querencia)를 찾아 정착하는 side D까지. ‘데미안’적 껍질을 깨고 나아가는 클리셰가 아닌, 완전히 그녀와 별하랑을 위한 세계의 문을 단단히 닫아버리는 앨범 세계관이 인상적이다. 미성숙에서 벗어나 야심 찬 케이팝 디바로 탈피한 청하를 우리는 모두 경이롭게 주시해야 할 것이다.
선정위원 조혜림
최우수 록-음반
소음발광 [기쁨, 꽃]
글자 그대로의 소음(騷音)과 발광(發狂) 만은 아니다. 내면의 우물로부터 길어 올린 소음(小音)은 휘청거리고, 소란스럽고, 부서지며, 깨지는 이 시대의 발광(發光)이다. 영도 앞바다를 눈앞에 그리듯 찰랑이는 하이햇과 청량한 기타 리프, 슬레지해머로 내리꽂듯 휘몰아치는 드라이브(이펙터) 사운드…. 펑크를 뼈대 삼아 포스트 하드코어, 익스트림 메탈 정서의 탑을 쌓고 비치 보이스 같은 선샤인 팝 컬러로 채색했다. 광기의 보컬은 시종 내달린다. ‘기타가 더 이상 울리지 않는(‘기쁨’)’ 시대에, 추락하면서도 현재를 살아내야 하는 삶(‘낙하’·‘춤’)을 위해. 아이돌 중심의 K팝만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서 태동한 이 록의 격랑이 세계로 출항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선정위원 권익도
최우수 모던록-음반
이상의날개 [희망과 절망의 경계]
포스트록 장르에서 기대할 특유의 보상감 - 긴 러닝타임, 점층되는 구성, 몰아치는 연주, 폭넓은 공간의 활용 - 에도 충실하지만, [희망과 절망의 경계]는 장르보다는 엄연히 정서와 서사에 중심을 둔 앨범이다. 밴드는 상실의 감정을 노래하지만 조급하거나 신파에 빠지지 않고 느린 템포 속에도 모호한 메시지와 밝은 코드워크, 퍼지한 톤 메이킹으로 꿈결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검정치마나 신해경의 그것과도 맞닿아 있지만, 조금 더 느긋하고 차분하며, 긴 호흡에도 80년대 가요들의 고즈넉함을 담은 선율로 자신만의 색을 분명히 한다. 성숙과 성찰, 약간의 낭만이 함께 하는, 묵직한 울림이 있는 앨범.
선정위원 홍정택
최우수 메탈&하드코어-음반
AGNES [Hegemony Shift]
일본 메탈 밴드로는 세계적인 지명도를 지닌 Rachel Mother Goose의 보컬리스트이기도 한 Mevin Kim(김성훈)의 솔로 프로젝트 형식인 AGNES의 첫 번째 앨범으로 실로 오랜만에 커버 디자인, 컨셉트와 수록곡, 믹싱과 마스터링의 완성도 등 삼위일체를 이뤄낸 헤비메탈계의 수작이다. 일본에서만 발매되어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화 되지 않았다면, 어렵게 수입 음반이나 음원 사이트 등을 통해서만 알려졌을 수도 있었을 음악들은 Mevin Kim의 창작 능력, 편곡과 기획, 가창력 등이 빛을 발한다. 1986년을 한국 헤비메탈의 기원으로 봤을 때 디오니서스, 스트레인저, 넥스트, 예레미, 미르 등에 이어 Symphonic/Power/Progressive Metal 유형을 추구하는 밴드는 두드러진 성과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앨범 타이틀에서 느껴지는 야심과 도전적인 면모와 함께 우리는 압도적 역량을 지닌 Mevin Kim과 AGNES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됐고, 유럽과 미국의 밴드들과 겨룰 수도 있는 내용물을 얻었다. 그간 익스트림 메탈/하드코어 계열에서는 뛰어난 밴드들이 다수 등장했었지만, 이런 테크니컬하고도 힘이 넘치는 스타일로는 대한민국 헤비메탈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필자의 방송에서 첫 번째로 내보낸 단 1곡의 역대급 폭발적인 애청자들의 반응으로도 AGNES의 음악적 성과는 이미 감지할 수 있었다.
선정위원 성우진
최우수 팝-음반
아이유(IU) [IU 5th Album 'LILAC']
[LILAC]은 뛰어난 프로듀서, 지휘자로서의 아이유(IU)를 재발견하게 되는 다섯 번째 정규앨범이다. 장르도 협업자도 모두 완전하게 새롭고 다른 10곡의 트랙은 시대를 관통하는 ‘아이유다운’ 사운드와 메시지로 연결되어 있다. 아이유(IU)가 만든 유니버스는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청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화려하고 다채로우며 변화무쌍하다. 이 앨범은 한 사람의 음악 취향과 아카이브가 궁금해지는 드넓은 스펙트럼과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담긴 거대한 음악 테마파크에 가깝달까.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며 건네는 ‘인사’이자 ‘젊은 날의 추억’과도 같은 또 하나의 명반을 남기며 아이유(IU)는 그렇게 다음 챕터로 넘어갈 준비를 마쳤다.
선정위원 김아름
최우수 일렉트로닉-음반
HAEPAARY(해파리) [Born By Gorgeousness]
지금까지 이런 음악이 존재한 적 있었던가? 해파리(HAEPAARY)는 독립적이고 독보적인 스토리를 만드는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듀오다. 이들의 첫 앨범 [Born By Gorgeousness]는 종묘제례악을 재조합한 독특한 세계관의 음악이다. 관념적이고 절제되어 있는 과거의 비장한 음악이 앰비언트, 테크노를 기반으로 한 실험적인 사운드와 만나 미래지향적인 오라를 뿜어낸다. 비트와 장단이 공존하고, 세종대왕이 작사한 노랫말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내적 댄스 본능을 일깨우며 흥미로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시각 예술, 퍼포먼스 등의 요소를 통해 음악의 메시지와 색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위한 무대 안과 밖의 노력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정위원 김아름
최우수 랩&힙합-음반
최엘비(CHOILB) [독립음악]
최엘비의 가장 큰 무기는 이야기다. 이미 두 장의 앨범([오리엔테이션], [CC])을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며 본인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전작들에서 대학생이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소환했다면, [독립음악]에서는 ‘음악가’가 된 현재로 시점을 옮겨온다. 잘나가는 동료들 사이에서 느꼈던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해체하듯 구체적으로 뜯어 전시하고, 이로부터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열등감을 억지로 극복하지 않고, 열등감으로부터 “도망가”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하는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이전부터 꾸준히 ‘롤모델’로 언급했던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응원을 받으며 막을 내리는 결말은 그의 행보를 쫓아왔던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가 작년 한 해 이뤄낸 성취는 [독립음악]의 이야기가 현실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짜릿하고 완벽한, 앨범의 또 다른 엔딩이 됐다.
선정위원 황두하
최우수 알앤비&소울-음반
THAMA [DON'T DIE COLORS]
알앤비/소울은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르 중 하나다. 그간 여러 음악가가 작품을 통해 나름의 장르적 시도를 해왔고, 그 시도가 20여 년 넘게 이어지면서 한국에서 알앤비/소울은 자연스럽게 토착화되기 시작했다. [DON’T DIE COLORS]는 선배들의 시도를 자양분 삼아 자란 THAMA라는 플레이어, 누기, 신드럼을 비롯한 연주자들, 버벌진트, 선우정아 등 다양한 피처링진이 분업하여 함께 만든 한국 알앤비/소울 씬의 단단한 결과물이다. 여기에 THAMA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가사에 녹여내고, 이를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보컬로 소화하기까지 했다. 많은 이가 [DON’T DIE COLORS]를 통해 알앤비/소울이라는 장르가 지닌 미덕은 물론, 한국 알앤비/소울 씬의 현재까지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선정위원 최승인
최우수 재즈-연주 음반
Jihye Lee Orchestra(지혜리 오케스트라) [Daring Mind]
오늘날 다양한 분야 작품이 우리만의 문법 혹은 'K'(한국)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것과 조금 다르게 Jihye Lee Orchestra(지혜리 오케스트라)의 [Daring Minds]는 현지의 언어를 기조로 시대와 정체성을 아울러 성과를 인정받은 진정 경계 없는 앨범이다. 빅밴드 오케스트라의 형태지만 뜻밖에 파고드는 진한 블루스 필이 인상적인 'Why Is That' 정도를 제외하고는 과거 그것이 전성기를 누렸을 때와 같은 스윙에 얽매이지 않으며, 다양하고 창의적인 작곡에도 난해한 실험에 천착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장난스러운 애니메이션, 때때로 심각한 영화 속 한 장면을 그리는 듯한 현대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이 모던 클래식 챔버와 같은 화사한 색채를 자랑하고, 관악기 편성이 취할 수 있는 하모니의 매력과 순간순간 재즈 그루브를 꼼꼼하게 배치한 편곡의 섬세한 면모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트랙마다 밴드를 뚫고 맹렬하게 또는 산뜻하게 전진하는 관악과 피아노의 솔로잉은 기지 넘치는 보컬 트랙을 접하는 듯한 멜로디 감각과 스토리텔링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지난 역사 재즈 빅밴드와 클래식, 팝의 클리셰를 두루 절묘하게 피해 가면서도 여러 매력을 세련되게 끌어안은 작품으로서 더 큰 기대와 설렘을 준다. 그가 치열하게 활동 중인 뉴욕신 너머 한국에서도 분명 가장 눈여겨봐야 할 올해의 재즈 앨범으로 손색없다.
선정위원 정병욱
최우수 재즈-보컬 음반
마리아킴 [With Strings : Dream of You]
보컬 재즈의 전통적인 접근 방식인 스탠더드는 부르기에 쉬운 듯하지만, 레퍼런스가 많아 작업이 녹록지 않다. 변별력 있는 스탠더드 음반을 만들려면 사전에 꼼꼼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2015년에 데뷔작 [Those Sentimental Things]를 자작곡으로 채워 발표한 마리아킴은 음반을 거듭 발매하면서 스탠더드의 완벽한 해석을 꿈꿔왔다. 이를 [With Strings : Dream Of You]에 녹여냈다. 스트링 채임버 앙상블과 재즈 쿼텟 사운드 위에 보컬과 피아노 연주까지 더해 이상적인 재즈 보컬 음반을 만들어냈다. 2022년 신설된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의 첫 주인공으로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선정위원 김광현
최우수 포크-음반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한 유튜브 광고가 외친다 “이 나라에서 가난한 건 죄예요.”라고. 가난은 정신병이지만 고칠 수 있다고. 물론 다수는 이 명제가 참이라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가난의 정의, 가난의 층이 사람의 수만큼 셀 수 없이 분화될 것이므로. 그렇지만 가난을 바라보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음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의문이 든다. 자신의 친구들은 어쩌다 죄인이 되었을까.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며 잠도 못자고 살았는데, 박강아름처럼 열심히 일하고 걱정하며 살았는데 말이다. 그 때문인지 시인은 사랑 노래를 포기하고 질문밖에 없는 노래를 만든다. 가장 멀리 떨어진 길을 찾아 돌아가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질문을 해 본다. "원하는 건 이루지도 못하고 왜 모든 일이 끝나도 우리는 함께가 아닌 건지"에 대해. 이랑은 말한다. "그건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빈자를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 때문"일 거라고. 그리고 노래는 말한다.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라고. 이 폭도, 이단, 마녀, 늑대의 출현은 포크의 시조새 우디 거스리를 거쳐 철학적으로는 운마저 분배에 녹이려 했던 롤즈를 지나 정치경제적으로는 현재 이 땅에서 한창 뜨거운 기본소득의 중요성에 이르게 한다.
선정위원 현지운
최우수 케이팝-노래
aespa 'Next Level'
SM 특유의 프로덕션으로 한층 더 다채로워진 노래와 곡에 찰떡같이 들어맞는 안무, 그리고 완성도 높은 aespa 멤버들의 보컬 및 랩 소화력, 그리고 비주얼까지. 눈과 귀의 복합적인 쾌감을 선사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소 어렵고 난해하게만 다가왔던 이들의 아바타 설정과 세계관 속 새로운 용어들이 ‘Black Mamba’에서 ‘Next Level’로 넘어오면서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한 해 동안 대중은 단순히 노래에 중독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들의 이야기가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더욱 몰입하게 됐다. 이야기의 ‘첫 단추’를 잘 꿰었으니, 이다음에 펼칠 스토리가 더욱 궁금해진다.
선정위원 이재은
최우수 록-노래
소음발광 '춤'
포스트 펑크와 네오 사이키델리아 장르는 패션이나 태도, 뉘앙스만 따진다면 꽤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음악 형식이나 연주 주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프 뮤직의 자장과 맞닿아 있다. 쟁글대는 기타 연주, 폭발적인 에너지가 응축된 음악이라는 면에서 특히 그러하다. ‘춤’은 스크리모 혹은 하드코어 같은 강성 록 장르와 친연한 연주 사이로 펑크와 연계되어있던 초기 신스팝, 고딕팝에서 들을 수 있던 읊조리는 보컬을 삽입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는 노이즈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청자의 집중력을 놓치지 않는 효과를 발휘한다. ‘춤’이 수록된 앨범 [기쁨, 꽃]을 듣노라면 록의 역사라는 거대한 지층 여러 부분을 비틀어 2021년 한국 젊은이의 혼란스런 감정을 표현한 소음발광이란 격렬한 단층운동이 벌어지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한국 록음악을 뒤흔든 이 단층운동의 결과가 압축적으로 밀집된 단층대가 바로 이 곡, ‘춤’이다.
선정위원 조일동
최우수 모던록-노래
실리카겔(Silica Gel) 'Desert Eagle'
2년여의 공백기 이후 새로운 데뷔를 선언한 지도 벌써 1년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매번 실험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실리카겔(Silica Gel)이 굳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선언한 것에는 기대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지난해 발표한 세 장의 싱글은 저마다의 새로움을 선보였다. ‘Desert Eagle’은 조금 다른 의미의 새로움이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전개, 매서운 사막의 바람처럼 몰아치는 연주, 서사가 있는 가사와 보컬 중심의 편곡 등 실리카겔(Silica Gel)답지 않은 익숙함이지만 그조차도 생경하게 느껴지는 사운드다.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밴드임을 증명해보인 노래.
선정위원 임은선
최우수 팝-노래
AKMU '낙하 (with 아이유)'
중독성 높은 후렴구 코러스에 80년대 뉴 웨이브의 세례를 제대로 받은 산뜻 깔끔한 신스 사운드! 이전 자신들로부터 두어 단계를 뛰어넘는 음악적 성장을 보인 작곡과 프로듀싱의 세련됨은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탈피하듯 전혀 다른 느낌과 매력으로 다가온다. (물론 여기엔 곡 전체의 편곡, 그리고 찬혁과 함께 작곡을 담당한 밀레니엄이라는 뮤지션의 역할도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느 흔한 사랑 노래와는 다른,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과 정신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 마인드가 엿보이는 노랫말 또한 곡의 호감도를 한층 더 높이는 요소. 이렇듯 반전이라고 말해도 좋을 이들 남매 듀오의 과감한 음악적 변신은 여러모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향후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더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는 발판도 마련한 것 같다.
선정위원 김희준
최우수 일렉트로닉-노래
HAEPAARY(해파리) '경포대로 가서 (go to gpd and then)'
현대와 동등하게 만난 전통이 스스로 아름답고 세련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수작. 전통적으로 ‘남창 가곡’은 남성들이 양반 다리를 꼬고 앉아,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풍류를 즐기며 편안하게 부르는 노래다. 그런 남창가곡 중에서도 주로 인생사를 노래한 계면조의 ‘언편’을 재해석한 ‘경포대로 가서’는 이 박제된 맥락을 부드럽게 해체시킨다.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낭창낭창한 일렉트로니카로 취하게 한다. 첫 EP [Born By Gorgeousness]를 통해 전통적으로 남성에게만 허락된 ‘종묘제례악’을 음악적·젠더적으로 부드럽게 균열 냈던 해파리는 그 유연함의 지속가능성을 ‘경포대로 가서’에서 재차 확인한다. 민희·혜원 두 멤버를 3D모델링한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는 가상현실로도 뛰어든다. 이들에게 전통은 현재와 기술을 가장 우아하면서 세련되게 즐길 수 있는 놀이터다. 언편 속 대취(大醉) 앞에 만취(滿醉)를 붙여 ‘만취대취’를 반복하며 노래하는 건 음악과 삶의 취기(醉氣)를 좇는 일과 같다.
선정위원 이재훈
최우수 랩&힙합-노래
창모(CHANGMO) '태지'
한국 대중음악에서 서태지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그의 목소리를 담고, 이름을 내건 트랙을 낸다는 것 자체가 주목을 모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TAIJI’에서 창모(CHANGMO)가 서태지라는 인물을 활용하는 방법은 이제까지 그 이름을 빌린 다른 음악들과는 또 다르다. 창모(CHANGMO)는 서태지를 본인이 꿈꿔온 커리어 목표의 실현과 물질적 성공의 증명을 위해 내세운다. 날것의 가사에는 그 성공을 견인한 원초적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타이트한 랩은 그것을 거침없이 폭발시킨다. 한 시대의 아이콘을 향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한국 힙합에서 가장 시원하고 힘 있게 성공 서사의 하이라이트를 그려낸 트랙.
선정위원 최용환
최우수 알앤비&소울-노래
SUMIN, Slom '곤란한 노래'
현재 SUMIN의 위치를 만든 여러 재능 중, ‘작사’는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단어들을 조합해 미처 몰랐던 미묘한 감정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캐치해낸다. '곤란한 노래'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앞서지만, 어딘가 어색해 ‘뚝딱거리는’ 여자의 모습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표현으로 절묘하게 묘사했다. 세련되고 단순해서 금방 따라 하게 만드는 중독적인 멜로디라인과 무그 베이스와 신시사이저로 간결하게 흥을 돋우는 Slom의 프로덕션도 매우 인상적이다. 비트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귀여운 가사에 미소 짓게 되는, 다층적인 매력을 지닌 올해의 알앤비 트랙이다.
선정위원 황두하
최우수 포크-노래
천용성 '보리차 (Feat. 강말금)'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은 현재까지 발표한 자신의 2장의 정규작 속에서 객원보컬을 초빙한 곡들을 여럿 수록해왔다. 이는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서사를 제3자의 보컬로 보다 객관화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 그 의도를 잘 살릴 보컬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그 점에서 이 곡은 배우 강말금의 가창을 통해 “항상 난 네 앞에 서면 행복한 마음만큼 무서웠다”는 곡의 중심된 감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미묘한 내면의 아쉬움까지 담아서 잘 표현했다. 일상 속 개인의 서사와 감정을 통해 다수의 공감과 사유를 이끄는 천용성의 음악적 방향성이 좋은 멜로디, 풋풋한 목소리와 시너지를 이뤘기에 올해의 포크 노래로 선정되기에 충분하다.
선정위원 김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