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 록 - 음반
OVerdrive Philosophy [64 see me]
음악을 녹음하고 고정하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통제되고 조율된 소리와 이를 배열하고 연출하는 것은 레코딩 음악의 미덕이 되었다. 하지만 일견 이러한 음악들은 무대와 청자 사이, 또는 연주자와 청자 사이의 거리감을 만들기도 했다. 순간의 경험을 주는 무대의 희소성을, 정밀하게 각색된 레코딩이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아이러니랄까. OVerdrive Philosophy의 [64 see me]는 제작과 녹음 과정에서 이러한 아이러니를 직면하고, 정면으로 대응하는 작품이다. 당연히 앨범은 정연하게 흐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텁텁하고 거친 사운드적 개성이 극대화된 앨범이기도 하다. 특히, 묵직해진 덩어리를 뚫고 나오듯 창의적으로 꿈틀거리는 연주의 존재감은 올해 여느 앨범과 비교해도 가장 독창적이다. 중립적 감상의 입장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선택을 과감히 밀어붙인 앨범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밴드 음악이라는 정체성이나 레코딩이라는 틀의 한계를 고민한 이러한 과감한 시도는, 늘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선정위원 홍정택
최우수 록 - 노래
서울 전자 음악단 'Ghost Writers'
기조는 ‘심플’이다. 3분 34초라는 러닝 타임이 증명하듯 사이키델릭을 추구하면서도 굳이 이걸 길게 늘리지 않았다. 이렇듯 조금의 낭비도 없이 사이키델릭 록의 정수를 길어내는 역량을 통해 서울 전자 음악단은 ‘과연’이라는 감탄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기왕의 곡들에 비해 다소 화사해진 톤도 인상적. 반면, 바이닐과 진공관 앰프를 떠올리게 하는 빼어난 사운드 퀄리티는 그들의 정체성과 뿌리를 되새기게 하는 요소로서 강력하다. 무엇보다 여유로운 호흡으로 사운드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듯 경유하는 신윤철의 기타는 이제 거장의 그것이라 칭해도 과찬은 아닐 것이다.
선정위원 배순탁
최우수 모던록 - 음반
실리카겔 [Machine Boy]
차가운 용암이다. 뜨겁도록 차갑다. 전기적 록과 전자적 팝의 이중전공, 또는 융합학부. 이 낯선 캠퍼스 위를 마음껏 뛰노는 건 익숙하되 새로운 경험이다. 리프와 리듬은 풍요롭게 굽이치고 그 푸른 잔디 위로는 벨벳의 멜로디 카펫이 팔방으로 뻗어간다. '모던록'이 모던과 록의 합성어라면, 이것은 2023년 모던록의 가장 뾰족한 마터호른일 수밖에 없다.
첫 곡 ‘Budland’에서부터 이상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흡사 본 이베어(Bon Iver)를 연상시키는, 액체 금속 로봇 T-1000처럼 흐물흐물 갈래지어 흘러내리는 보컬 하모나이저가 튀어나온다. 기타의 불길하도록 발랄한 연속 발현(撥絃), 톰톰(tom-tom) 드럼의 편집증적인 박동은 잔혹동화 속 방향 잃은 깨금발 앙감질처럼 천연덕스럽게 악곡을 몰고 가고, 마침내 분출하는 후렴은 은서(隱棲) 부족 방언인 듯 불가해한 ‘야바히바라히요’의 찬트다.
쉬이 들리나 쉽게 휘발되지 않는 선율들, 실험적 악곡에 대중성의 허브(herb)를 뿌려대는 보컬 멜로디는 시종 본작의 절경이다. 전기기타 사운드도 특기할 만하다. 이 전자적이며 유기적인 이율배반의 질감은 보컬과 함께 ‘머신 보이’라는 가상 인공 유기체를 청각적으로 조형해 낸다. 이어지는 ‘Mercurial’ ‘Realize’까지…. 록의 타격감이 팝의 유연성을 포용하고, 분출하는 기승전결의 음악적 드라마로까지 나아간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추상적이며 현대적인 시어, 또는 가사는 이 음악적 흐름에 의해 멱살 잡혀 ‘하드캐리’ 된다.
앞의 세 곡이 새로운 ‘팝-록’ 공식을 천명했다면 후반부를 점한 9분 21초짜리 대곡 ‘Machineboy空’은 곡 단위의 이해 기반을, 그 X축과 Y축을 과감히 옮겨 버린다. 결과는 본작이 사실 사이키델릭 록이자 프로그레시브 록이며 곧 콘셉트 앨범임을 과시하는 것이다. 중반부의 피아노 솔로는 꿈과 꿈, 또는 꿈과 현실을 잇는 기이한 현수교다. 고전 음악인 척 굴다 불협음으로 앙탈 부리며 끝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처음의 반복구로 시나브로 연결돼 버린다.
학자연하는 이뿐 아니라 문외한, 삼척동자의 이목도 단숨에 삼켜버리는 쾌작들이 있다.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의 회화처럼 말이다. [Machine Boy]가 그러하다. 본작은 인공지능 시대, 발랄한 팝의 동산에 전시된 기괴하고 아름다운 조각품이다.
선정위원 임희윤
최우수 모던록 - 노래
실리카겔 'Tik Tak Tok (Feat. So!YoON!)'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탄탄하게 쌓아온 실리카겔의 내공이 부상하는 시기와, 모던락 신 전반의 사운드/아이디어적 빈곤이 비슷한 시기에 겹쳐지는 것은 꽤 아이러니하다. 그만큼이나 ‘Tik Tak Tok’은 밴드가 축적해 온 연주력과 아이디어, 에너지를 빼곡한 전개 안에서 쏟아내듯 불태우는 작품이다. 후킹한 리프, 맺고 찌르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인지한 보컬 라인, 곡의 절반을 종횡무진하는 기타 솔로에 이르기까지. 이 곡은 밴드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를 가장 강렬한 형식으로 경쟁하듯 드러낸다. 메시지나 연주의 역동성에서, 그들의 곡 중 락스타적 면모에 가장 가까워진 곡이기도 하다.
선정위원 홍정택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 음반
마하트마 [REASON FOR SILENCE]
2023년 한국 헤비메탈을 되돌아보면 척박하다는 말 외에 적당한 표현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도 놀랍도록 단단한 후보작들을 만들어냈다. 마하트마의 [REASON FOR SILENCE]는 그중에서도 발군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네 번째 정규작에 이르는 18년 동안 밴드는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을 깎고 다듬었다. 그 결과 마하트마가 가장 잘하는 꽉 짜인 음악을 지속하면서도 변화를 품어내는 길을 찾아냈다. 무채색 그로울링이 득세하는 장르 전반의 흐름과 비교해 고전적이라 할 멜로디를 강조하며 내지르는 창법으로 변화한 윤종갑의 보컬은 오히려 밴드에게 새로운 운신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이준선(드럼)과 정영상(베이스)이 더 복잡한 리듬으로 새 변화에 깊이를 만들면, 젊은 피 서동휘(기타)가 보컬과 또 다른 멜로디를 곳곳에 찔러 넣으며 변화를 확장한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가다듬어온 신념이 유연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중심을 가진 음악으로 증명되는 순간이다.
선정위원 조일동
최우수 팝 - 음반
이진아 [도시의 속마음]
이진아의 음악이 사람들에게 처음 주목받은 건 특유의 독특함 때문이었다. 이진아의 음악은 이진아 그 자체였다. 목소리에서 멜로디까지, 그의 음악에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계절을 거듭 겪으며 무럭무럭 자라난 개구쟁이의 웃음소리가 둥둥 떠다녔다. 그 맑은 기운은 사람들의 사랑을 모으기도, 이진아 음악에 남다른 차원의 벽을 세우기도, 음악가 이진아를 방황하게도 했다. 계산되지 않은 자유로움으로 숨 쉬듯 음악을 만들던 그가 단 한 곡도 만들어내지 못하던 시간 끝에 완성한 [도시의 속마음]은 앨범의 테마인 도시는 물론 조각났던 이진아의 내면까지 나만의 설명서를 바탕으로 재조립해 나간 여정의 기록이다. 든든한 음악 동료들의 격려 속 부쩍 깊이를 더한 이진아 표 팝 사운드가 앨범을 채운 음표와 감정 속을 즐겁게 누빈다.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고, 한순간도 따스함이 끊이지 않는다. 좋은 팝을 들으며 우리가 보내는 시간처럼.
선정위원 김윤하
최우수 팝 - 노래
AKMU(악뮤) 'Love Lee'
AKMU(악뮤)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일상 속 진심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영리한 가사로 담아내고, 단순한 코드만으로도 다채롭고 개성 있게 멜로디 변화를 담아내며, 거기에 그 모든 소재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유연하고 매끄러운 톤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그들과 함께 살아 숨 쉬며 대화하는 느낌마저 든다. ‘Love Lee’는 AKMU 두 사람의 관계처럼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의 귀여운 사랑을 특유의 스타일로 ‘러블리’하게 표현해 낸 노래다. 특히 편안함 속에 살짝 숨어서 목소리를 슬쩍 받쳐주는 사운드 연출 능력에는 감탄 밖에 나오질 않는다. 예쁘고도 훌륭한 곡이다. 이제 악뮤토피아는 이상이 아닌 현실에 더 가깝다.
선정위원 김홍범
최우수 케이팝 - 음반
NewJeans [NewJeans 2nd EP 'Get Up']
NewJeans는 케이팝을 수놓는 수많은 아이돌 중 음악 스타일 면에서 딱히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포지션을 차지한다. 당연한 얘기를 왜 하나 싶겠지만, NewJeans는 케이팝 그룹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돌을 빙자한 성인가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성별과 연령을 뛰어넘는 팬덤을 형성할 만큼 묘한 매력을 품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케이팝은 하나라도 더 많은 장르, 하나라도 더 꽉 찬 사운드를 담기 위해 맥시멀리즘을 표방한다. 그러나 NewJeans는 독특하게도 미니멀리즘에 기반한다. 이들의 음악에서 '여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UK개라지와 드럼앤베이스 같은 1990년대 전자음악의 향기는 꼭 필요한 만큼의 색깔을 더한다. 덕분에 앨범 전반에 펼쳐진 여백은 비어있음이나 부족함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입체감이 큰 공간을 설계하게 되었고, 듣는 이가 앨범의 흐름과 똑같은 속도로 감정을 맞춰갈 수 있도록 여유를 부여하기도 한다. NewJeans가 너무 독식하는 게 아닐까 우려도 했지만, 결국 NewJeans는 달랐고, 그것이 선정의 이유다.
선정위원 김봉환
최우수 케이팝 - 노래
NewJeans 'Ditto'
음원 차트 1위는 있으나, 히트곡이 없는 케이팝 시대에 그룹 NewJeans의 'Ditto'는 유행가(流行歌)가 됐다. 음원 발매 1년이 지났지만, 각종 차트 붙박이다. 연말연시마다 스테디셀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근 유행한 미드 텐션의 선두 주자로 질리지 않는다. 거칠면서도 아련한 미국 볼티모어 클럽 댄스 뮤직 장르를 애틋한 두근거림으로 재해석했다. 250·일바 딤버그의 세련된 감성의 멜로디, 검정치마·우효의 아릿한 노랫말이 빚어낸 시대의 징후다. 개별 추억을 보편적 서사로 '공감'하게 만들며 심장을 울린 민희진 프로듀싱의 힘도 크다.
선정위원 이재훈
최우수 일렉트로닉 - 음반
Yetsuby [My Star My Planet My Earth]
드넓고도 오밀조밀한 사운드스케이프. [My Star My Planet My Earth]에서 Yetsuby가 보여주는 보폭에는 별을 뛰어넘을 듯한 거대함과 티끌 하나마저 넘어가지 않을 듯한 신중함이 혼재되어 있다. 하드코어와 정글, 테크노를 횡단하며 행성과 우주에 대한 비전을 쏟아낼 듯이 달리던 사운드가, 어느 순간 심플한 반복과 귀여운 샘플링이 만드는 국소적 조각 속으로 중심을 이동시킨다. 그 자유로운 전환 속에서 엿보이는 건 자신감이다. 다채로운 스타일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의 소리를 찾겠다는 의지, 댄스 플로어와 사운드 실험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기민함, 그리고 소리의 시공간을 늘리고 휘젓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My Star My Planet My Earth]는 이 모든 것이 쌓여 만들어진 자신감으로 작지만 분명한 파열을 만들어낸다.
선정위원 정구원
최우수 일렉트로닉 - 노래
CIFIKA 'Hush'
어떤 음악가든 노래를 만들 땐 목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신기하게도 무게감은 장르와 상관없이 곡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이런 점을 대입해 봤을 때 CIFIKA의 ‘Hush’는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미래적인 분위기 안에서 호소력 짙은 음색이 결합한 느낌도 클 것이고, 안무와 의상, 특수효과까지 동반된 뮤직비디오 자체가 전달하는 감정도 한몫할 것이다. 쉽고 빠르게 흘러가는 유행의 흐름 속에서 ‘Hush’의 존재가 유독 돋보이는 건 이런 지점 때문이 아닐까. 일렉트로닉 팝으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역을 제공함과 동시에 곡이 가진 메시지를 고민할 자리도 마련해 주니까. CIFIKA는 3년 만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듣는 이가 관심 가질만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선정위원 이종민
최우수 랩&힙합 - 음반
빈지노(Beenzino) [NOWITZKI]
빈지노(Beenzino)는 청춘의 아이콘이자 힙스터들의 힙스터로 한 세대를 대표했었다. 그래서 그의 7년 만의 앨범인 [NOWITZKI]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30대 중반의 나이, 결혼과 군대라는 한국 사회에서 젊음과 멀어진다고 여겨지는 상징적인 지점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는 'Stinky Kiss (Intro)'가 시작되자마자 사그라든다. 마치 그간의 시간을 머금다가 앨범에 흩뿌린 것 같다. 그를 규정했던 매력 넘치는 곡들은 그 시대에 남겨두고, 성숙함과 나른한 여유, 때로는 날카로운 시선을 더한다. 'Monet'을 들으면 'Dali, Van, Picasso'가 떠오르고, '여행 Again'과 'Sandman'은 각각 'We are going to'와 'Aqua Man'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 하룻밤 야영으로 군 생활을 그려낸 'Camp'와 기억의 조각들을 엮은 'Change'의 아련함은 'Time Travel'의 유쾌함과 연결된다. 여전히 젊지만, 새로운 단계를 맞이한 이들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를 슬쩍 건네는 듯하다.
빈지노의 다채로운 플로우와 잘 짜인 라이밍, 괴짜 같지만 꾸밈없는 진심이 느껴지는 가사는 놀랍도록 신선하고 낭만적인 무드의 프로덕션과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NOWITZKI]는 빈지노의 예술가로서의 재능과 매력이 생의 한 시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다.
선정위원 남성훈
최우수 랩&힙합 - 노래
E SENS 'What The Hell'
시간이 지나도 존중받아 마땅한 가치는 어느 분야에나 있다. 탄생 50주년을 맞이하며 퍼포먼스와 프로덕션의 형태가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힙합에서는 여전히 탄탄한 라이밍, 유려한 플로우 디자인, 삶에 대한 태도와 재치가 묻어나는 작사법 등이 그렇다. E SENS의 'What The Hell'은 군더더기라고 할 만한 요소를 모두 떼고 오직 그 핵심에만 충실하게 군 2023년 최고의 힙합 넘버다.
그는 [저금통] 전반에 걸쳐 참여한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키(Hukky Shibaseki)의 간단해서 더 긴장감 넘치는 리듬 위에서 "켕기는 거 없이 뒤가 깨끗하다"고 말하며 클래식한 힙합 특유의 러프하고 로우(Raw)한 맛을 십분 살려낸다. 특히 각 벌스의 종반부로 달려가면서 한마디에 2, 3개씩 쏟아내는 다음절 라임을 자연스러운 어투로 녹여내는 E SENS만의 랩은 힙합 팬들이 아는 한 가장 깔끔해서 더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청각적 쾌감이 가득한 형태의 퍼포먼스다. 아직도 이렇게 빡빡하게 랩을 해서, 사실은 지금도 그렇게 '빠꾸 없이' 랩을 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자가 보여줄 수 있는 멋들어진 분출이다.
선정위원 김정원
최우수 알앤비&소울 - 음반
저드(jerd) [BOMM]
[BOMM]을 듣는 경험은 그야말로 광활하다. 붐뱁, 록, 펑크(Funk), 일렉트로닉부터 옛 가요까지 널뛰는 스펙트럼 위에 저드(jerd)의 리드미컬한 보컬이 얹어지는 순간 장르의 색이 명확해진다. 젊음의 우울과 불안함을 구체적이고 뾰족한 어휘와 변화무쌍한 문법으로 그려낸 가사는 감정을 파도치게 하며 순식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홍시'에서 '영업 안 합니다'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밑바닥을 훑고 나온 것처럼 강렬하다. 여러 장르와 감정을 저드는 자신의 이름 아래 하나의 완벽한 작품으로 녹여냈다. [BOMM]을 들으면 2023년 한국에서 알앤비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팽창하고 깊어졌는지, 그 극한의 현재를 체감할 수 있다.
선정위원 황두하
최우수 알앤비&소울 - 노래
유라(youra)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
싱어송라이터 유라(youra)와 재즈 트리오 만동의 베이시스트 송남현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져일까. 유라의 정규 1집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는 잔상이 오래 지속된다는 점에서 유성우와 닮았다. 특히나 그 궤적의 시작점에 위치한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의 휘영청 흐르는 듯한 사운드는 듣는 이로 하여금 노래의 안팎을 오가며 공상하고 때때로 부유하도록 한다. 특히, 별다른 주저 없이 치고 나오는 유라의 목소리로 시작 되는 인트로와 이윽고 이어지는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질주는 왠지 모를 짜릿함을 선사한다. 음색과 은유의 맛을 놓치지 않은 가사는 3분짜리 노래에서 직독 직해를 원하는 세계에 조용히 반기를 든다. 그런 점에서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는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와도 맥락을 함께한다.
어디까지나 음악의 중심을 뮤지션 내면에 두고 유라 스스로 확장된 정체성을 담아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촉수 돌기의 발현이자, 모티프이며, 우리 모두인 ‘나' 자신의 일부다. 고단한 세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관계 중 하나는 ‘내’가 포함된 음악 자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세계와 ‘나’ 사이, 그 관계의 틈을 파고든 유라의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는 앞으로 지속될 세계의 시간 속에서 유유히 공명할 것이다.
선정위원 이진수
최우수 포크 - 음반
여유와 설빈 [희극]
제주에서 사는 삶이 낭만화된 적이 있었다. 여전히 그 여진은 남아 있지만, 이제 제주의 삶을 대도시에서 찾을 수 없는 치유의 시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느 곳에서 머무는 것이 그 자체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여유와 설빈은 제주에서 살고 노래하며 활동하는 듀오다. 그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인 [희극]은 연주자들의 구성, 레코딩에서 후반 작업 등 시작부터 끝까지 제주에서 만들어진 앨범이다. 낭만적인 제주의 풍경이 아닌 슬픔이라는 삶의 진실을 은유와 직설로 담아낸 이들의 음악을 듣고 수많은 사람이 큰 위로를 받았다. 진실이 주는 위로였다. 제주에서 만들어졌지만, 특정한 시공간을 넘어 오래오래 곁에 두고 사랑받을 지난 한 해 가장 큰 감동을 준 앨범이다.
선정위원 박정용
최우수 포크 - 노래
여유와 설빈 '밤하늘의 별들처럼'
어쩌면 육지의 한국인들에게는 자국 내에선 가장 낭만적 장소처럼 여겨지는 제주도에서 꾸준히 음악을 해온 여유와 설빈은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곳의 아름다움 뒤에 숨은 현실의 차가움을 더 잘 느껴왔을지도 모른다. 앨범 [희극]의 타이틀 곡의 역할을 하는 이 곡에서 바로 그들은 이런 양면의 감정들, 세상과 거리를 두며 사는 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풀어놓는다. 꿈을 찾아왔지만 다시 현실에 짓눌린, 그러나 결코 그 꿈을 포기할 수 없는 그 양면의 감정을 이 곡은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인 두 사람의 목소리의 조화로 구현한다. 특히 후반부에 잔잔한 어쿠스틱 연주 위에서 구현되는 두 멜로디의 교차 속의 몽환적 분위기는 곡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바로 이 매력이 너무나 진실하게 다가오기에 이 곡이 올해의 포크 노래로 선정된 이유라 생각한다.
선정위원 김성환
최우수 재즈 - 보컬 음반
김유진 [Extraordinary]
[Extraordinary]는 ‘김유진’을 한국 재즈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확실히 각인시켜 주는 앨범이다. 작년 데뷔작이자 한대음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 수상으로 주목받은 [한 조각 그리고 전체] 이후 단 1년 만에 나온 작업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뚜렷한 성장과 음악적 변화가 단숨에 느껴지는 오리지널 곡들이 앨범 전체에 풍성하게 실렸다. 재즈의 문법 안에서 팝, 록, 라틴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언어를 융합하며 확장성 있는 작곡과 작사 역량을 선보였고, 한층 더 와일드하고 과감해진 표현력으로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신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김유진의 에너지를 단단하게 받쳐내는 연주자들(송인섭, 송준호, 임은지, 이수정, 송하연)과의 조화도 인상적이다. 2년 연속 수상이라는 이례적인 성과가 김유진의 미래뿐만 아니라 한국 재즈의 발전에 의미 있는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선정위원 김민주
최우수 재즈 - 연주 음반
이수정 [Four Seasons]
색소폰 연주자 이수정은 이번 앨범을 통해 즉흥연주에 개인의 서사와 사회에 대한 응시를 엮어 더 넓은 의미의 즉흥에 가닿는 연주를 선보인다. 또한 피아노 같은 화성 악기가 포함되지 않은 구성을 통해 화성의 틀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멜로디로 이야기를 건네는 데 집중한다. 이선재의 테너 색소폰과 교차하는 ‘416’은 참사에 대한 마음속 소리를 꺼내 놓으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모기’에서의 독주는 사소해 보이는 제목으로부터 멀리 뻗어 나가는 심상을 전한다. 여러 계절이 지날수록 이수정의 이야기는 더 풍부해지고 더 나아가며, 더 자주 뒤돌아볼 것이다. 그중 이번 앨범처럼 선별된 몇 순간만으로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선정위원 조원용
최우수 글로벌 컨템퍼러리 - 음반
동이 [날초소 분석법]
우리가 매운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 들어온 고추 이후의 일인 것과 같이 정체성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체성의 문제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마치 과거를 모르는 사람의 심정처럼 어떻게 해서든 분석해서 알아내야 하는 삶의 과제인 것이다. 그 해체의 과정에서 홍난파의 '달맞이'처럼 친숙함이 달려오기도 하고 일본 시처럼 시대의 소산으로 끌어당기는 순간을 만난다. 대다수는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아티스트가 가감 없이 풀어내는 정면 승부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숙제를 자신의 개인적인 소회로 다 풀어헤쳐 완전히 다시 정립하는 술수를 말이다. 이 해체 작업은 휘몰아치는 칼날 위에서의 찬바람과 안쪽으로 파고드는 이불속에서의 편안함을 오가며 대화합의 장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카이노'에 이르러서는 정체성으로 경계 맺은 모든 울타리와 경계선을 허무는 궁극의 정착지에 다다른다. 이 익숙한 새로움과 낯선 반가움이 교차하는 쌉쌀함이 미래에서 온 전령은 아닐까.
선정위원 현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