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음반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말을 거는 음악’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상상해 본다. 많은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나는 [늑대가 나타났다]를 들으면서 타인의 자리를 비워 두지 않는 음악을 생각한다. 음악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그 음악을 듣게 될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당연한’ 원리를 당연시하지 않는 음악. 음악을 듣는 타인들에게 이 소리와 언어가 가 닿을지를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삶을, 가치관을, 심지어는 그 불확실함마저 담아내고야 마는 음악. 그럼으로써 자신(과 동시에 수많은 소수자들)이 지닌 소리와 이야기를 타인의 귀뿐만이 아닌 생각 속에, 마음 속에 머무르게 만드는 음악. 짜임새 있는 송라이팅/프로덕션과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대담한 음악적 시도, 진솔한 스토리텔링 같은 이미 훌륭한 가치들 이상으로 이 앨범을 빛나게 만드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랑이 이 모두를 타인에게 가 닿게 만들고자 분투하는 바로 그 태도일 것이다. 은유하고(‘늑대가 나타났다’) 외치고(‘환란의 시대’) 묘사하고(‘빵을 먹었어’) 상상하고(‘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대화하고(‘대화’) 잘 듣고 있다고 말을 거는 동시에 잘 듣고 있냐고(‘잘 듣고 있어요’) 질문하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그 모든 수행을 통해 “사회를 이루는 것은 사람들이며, 그들 각자는 타자를 사회적 죽음으로부터 끌어내는 힘을 미약하나마 가지고 있다”(『사람, 장소, 환대』 中)는 점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끊임없이 말을 거는, 그럼으로써 죽음에 저항하는 앨범.
선정위원 정구원
올해의 노래
aespa 'Next Level'
메타버스, 케이팝, 아바타, A.I, 미래 엔터테인먼트. ‘Next Level’은 한 곡의 노래가 감당할 수 있다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이 모든 것이 골고루 섞여 들끓는 진귀한 용광로다. 한 손에는 어느새 시대 정신이 되어 버린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을, 다른 한 손에는 ‘SM 레트로’라 해도 좋을 프로듀서 유영진 특유의 비장한 사운드와 메시지를 들고 시대와 세대를 종횡무진으로 휘젓는 노래는 그 에너지 자체만으로 듣는 사람을 압도한다. 오감을 자극하는 사운드와 노랫말, 퍼포먼스와 가창 모두 듣는 이의 멱살을 잡아채 지금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순간이동 시킨다. 스며드는 음악에 익숙해 있던 심신에 붉은 경고등이 켜진다. ‘Next Level’은 2021년 한 해, 노래 하나가 어디까지 낯설어 질 수 있는지, 몸집을 불릴 수 있는지를 그렇게 시험했다.
선정위원 김윤하
올해의 음악인
방탄소년단(BTS)
‘Butter’, ‘Permission To Dance’, 콜드플레이와의 ‘My Universe’까지. 세 곡 연달아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핫 100’에 ‘핫 샷 데뷔’로 정상을 밟고, ‘Butter’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1위를 기록했다. 유수의 빌보드 역대 기록을 갈아치운 한 해였다. 누군가의 흥행 성적으로서 국한되지 않는다. ‘Permission To Dance’와 ‘My Universe’는 음악을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함께하는 경험을 환기해,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희망을 담은 노래로서 2021년의 세계를 대표하는 곡으로 꼽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선한 영향력’이 특유의 어젠다로서 확장하면서 방탄소년단(BTS)는 매우 독보적인 형태로 대중과 관계를 맺는 존재로서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족적을 남기고 있다. 국내 시각에서 역시, 한국 대중음악이 바라보는 지평을 압도적으로 넓힌 것이 방탄소년단(BTS)의 2021년이었다.
선정위원 미묘
올해의 신인
aespa
이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을 통해 자리 잡은 케이팝 시장에 세계관이라는 키워드를 선보인 것도, 메타버스라는 큰 화두를 제시한 것도, 한 레이블 전체를 활용해 거대한 IP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던진 것도 SM 엔터테인먼트였다. 그 중심에는 짧은 시간 안에 자리 잡은 aespa가 있었다. 누군가는 아바타의 존재나 가사 속 단어를 여전히 따라가기 어렵다고 하지만 결국 재미있게 즐기는 대상이 되었고, 'Next Level'부터 'Savage'까지 매력적으로 소화해냈다. 퀄리티 상향 평준화에 의해 이제는 ‘신인답지 않다’는 말이 의미가 없어졌지만, aespa는 그중에서도 더욱 돋보이는 실력과 매력을 증명했다. 길게 활동해도 히트곡 하나 가지기 어려운 요즘, aespa는 그걸 1년 안에 해냈다.
선정위원 박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