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2022 올해의 노래
첼로의 섬찟한 글리산도가 문을 연다. ‘전설의 고향’에서 한밤의 저승사자가 미닫이문 여는 소리 같다. 곧 이어 걸어오는 덤덤한 내레이션.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밑그림은 싱겁다. 러닝타임의 90%를 G와 F, 단 두 개의 코드가 받친다. 묘한 것은 설계다. 이렇다할 후렴구나 기승전결이 없다. 기이하게 불안정한 화성 진행 위를 음표들은 시종 유령처럼 부유한다. 노래의 질감이 쾌활하나 불길한 이유는 비단 살벌한 가사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겹겹이 화음으로 감싼 이랑의 메인 보컬, ‘마녀가, 폭도가, 이단이, 늑대가 나타났다!’는 제창부는 노랫말과 결합해 듣는 이의 뇌리를 덩굴식물처럼 휘감는다. 크로매틱과 글리산도로 치닫는 첼로가 열었던 문을 또 한 번 기이하게 닫는다.
3분 38초의 재생시간은 폭 3.38m짜리 극사실주의 회화처럼 눈앞에 당도한다. 마녀, 빵, 갈퀴, 성문, 곡물 창고, 포도주…. 시어 하나하나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잔혹한 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중세 유럽풍 풍경 속으로 초대한다. 허나 이는 물론 과거의 전설도, 이국의 이야기도 아니다.
공포의 노래다. 활기차고 섬뜩한 포크송이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 석재 채취장에 사람이 파묻혔다고 한다. 플랫폼 노동, 산업 재해를 비롯한 사회의 이런저런 흉터를 아이의 고사리손끝처럼 태연하나 통렬하게 가리키는 뭔가가 여기 있다. 현대적, 효율성, 유연성 등등 미끈한 간판을 포좌처럼 매단 성문 앞에 오늘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온다. 경계선을 두드리며 안쪽으로 진격하는, 노래가 나타났다.
선정위원 임희윤
아티스트이랑
음반명늑대가 나타났다
노래명늑대가 나타났다
제작사유어썸머
유통사YG PLUS
발매일2021.08.23
작곡가이랑
작사가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