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로스

여느 해 보다 풍요로웠던 2008년의 한국 대중음악계가 성취한, 가장 아름다운 미적 결과물로 로로스의 [PAX]를 뽑는 데 이견을 제시한 사람은 없었다. 이미 검증된 길을 안전하게 따라가는 게 아니라, 불모의 땅에 새로운 길을 놓을 때 신인은 신인답다. 그런 면에서 로로스의 데뷔 앨범 [PAX]는 한국 대중음악의 영토에 안개꽃으로 뒤덮인 길을 놓는 수작이었다. 이미 각종 페스티벌과 신인발굴 프로그램을 통해 입소문의 중심에 서있던 그들은 이 앨범으로 그 소문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공증서를 썼다. 포스트 록의 방법론을 빌어 펼쳐내는 몽환의 이미지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소리로 그린 그림이라 해도 좋다. 키보드가 기둥이 되고 활을 이용한 기타 사운드가 그 주변을 감싼다. 첼로가 서정의 가니시를 얹고 드럼이 감정의 완급과 고저를 조절한다. 일반적인 밴드의 문법을 벗어나있는 그들의 음악적 스타일은 단순히 형식에 그치지 않고 표현 그 자체를 위해 적절히 활용되곤 한다. 방송을 위해 3-4분 내로 노래가 끝나야한다는 고정 관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의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최소 5분을 훌쩍 넘어가는 시간을 통해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태도 또한 신인으로서 이들에게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던 덕목이다. 이런 음악을 음반에 담기 위한 노하우가 부재한 현실에서, 의미있는 사운드를 담아낸 로로스의 노력에도 기꺼이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