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음반
빈지노(Beenzino) [NOWITZKI]
빈지노(Beenzino)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다. 그는 청춘의 단면을 눈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제는 빛바래진 가치들에 대한 낭만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NOWITZKI]의 빈지노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자신의 삶을 노래한다. 신혼('침대에서/막걸리'), 여행('여행 Again'), 군대('Camp')처럼 또래의 한국 남자들이라면 겪을만한 사건부터 일반적인 것과는 동떨어진 화려한 예술가의 삶('Monet', 'Coca Cola Red', '바보같이' 등)까지. 그가 겪었던 시간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가만히 들여다보며 각자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변화하는 삶의 단계에서도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와 지키고자 했던 멋을 잃지 않으며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단선적인 진행을 벗어나는 플로우와 허를 찌르는 워드 플레이가 곁들여진 가사, 로파이(Lo-Fi)한 질감으로 포장한 세련되고 따뜻한 분위기의 프로덕션은 빈지노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감각적인 사운드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를 살아가는 30대 청년의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빈지노는 여전히 트렌드의 선두에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NOWITZKI]는 그를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선정위원 황두하
올해의 노래
NewJeans 'Ditto'
"라-타-타-타" 울리는 심장은 찬란하고 눈부신 그때의 우리에게 보내는 달콤하고 아련한 안부 같다. 교복을 입고 시공간을 감싸안으며 춤을 추는 소녀들의 희구하는 눈빛은 시간을 움직이고 낯익은 기억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1998년의 어느 학교에서의 보낸 발신이 아스라이 21세기에 닿아 애틋하고 그리운 너와 나를 이어줄 것이라 믿는다. 데뷔와 동시에 큰 성공을 이뤄낸 NewJeans가 4개월 만에 가져온 Ditto는 발표와 동시에 전 세대를 아우르는 선명하고 아름다운 유행가의 탄생을 알렸다. 강력하고 화려함으로 무장한 가요계에 느슨하고 꿈결 같으며 따스한 온도를 가져온 Ditto는 볼티모어 클럽 장르를 재해석하여 그 어느 때보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같은 설렘을 구현했다. 우리의 지나간 학창 시절을 반짝이는 사랑스러운 피사체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겨주었고, 어설픈 듯하지만, 진심을 다한 마음과 진실한 우정은 누군가, 아니 우리의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기억 속으로 살금살금 걸어들어와 마음을 자극했다. 그들이 보낸 Ditto란 애틋한 전언에 우리는, 전 세계는 NewJeans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용기와 응원의 회신을 보낸다.
선정위원 조혜림
올해의 음악인
실리카겔
전작들부터 구축해 온 실리카겔의 사운드 하이웨이는, 점멸하는 신 사운드 수혈로 스탠리 큐브릭 같은 첨단을 열고 있다. 전복적인 기타 프레이즈는 흡사 '섬광처럼 번쩍이는 사막 유령들(곡 'Desert Eagle' 콘셉트)'의 광란, 기계 같은 음성변조와 미니멀-맥시멀 라인을 광적으로 해체시켰다 조립하는 다채로운 악곡 구성들. 각자 멜로디를 써오고 앙상블식으로 이어 붙이다 보니 생경한 스케이프가 일어나고, 그것은 기존 소리들의 주파수와 연결되는 새로운 다중우주를 낳는다. 'Desert Eagle'-'NO PAIN'을 잇는 'Tik Tak Tok'의 대곡적인 멜로디라인과 메인리프, '에이블톤라이브 DAW'('MAX MSP 코딩프로그램' 내 플러그인) 같은 '뉴 인스트루먼트'의 도입, 박제되기보다는 둥글게 흐르도록 놔두는 가사의 창작 방식, 음악과 실시간 동기화하는 패션 착장…,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조명과 비디오로 쌓아 올린 비행선체 같은 무대로 구현하는 순간, 시공은 뒤틀린다. 정작 본인들은 연출보다는 Weather Report, Miles Davis를 동경하며 연주 중심의 앙상블을 추구하는 팀이라지만. '록의 사멸'을 이야기하는 한국 대중음악 신의 최전선에서 실리카겔은 분명 독보적인 색채로 음악적, 장르적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아이돌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숏폼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고, '요즘 시대의 록'이라는 테제를 극한값까지 끌어올리며. 실리카겔 붐은 결국 근간이 탄탄한 좋은 음악이 컨템퍼러리 힙스터 문화를 관통할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이며, 현시점 한국 록의 분명한 미래다. '펜타포트'와 같은 국내 대형 페스티벌부터 홍콩 '클라켄플랍'과 일본, 대만까지 거친 '기계소년(EP 음반 [Machine Boy] 속 캐릭터)'의 꿈은 더 넓은 세계로 비상(飛上)하려 한다. K라는 카테고리에 묶이기 보단 치열하고 비상(非常)한 록으로, 한국 대중음악 신의 팽창 우주는 여기에.
선정위원 권익도
올해의 신인
KISS OF LIFE
2000년대 미국 힙합/R&B를 흡수한 케이팝의 익숙한 향취, 수많은 것을 끌어와 분방하게 조합하며 맥락을 창작하고 이를 정교한 구성미로 마감하는 케이팝의 작법, 그러나 이를 아주 낯설게 재연한다. 매우 케이팝적이면서도 동시에 이질적이고, 복고적이면서도 동시대적이다. 좋은 취향과 날카로운 안목, 군더더기 없는 완성도, 유려한 힘과 관능, 탄탄한 기량과 참신한 과감성이 조합되었는데, 그 양상을 ‘모범적’이라 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그 표현이 이들의 용감한 도전을 빛바래게 할까 하는 우려 뿐이다. KISS OF LIFE를 올해의 신인으로 꼽는 의의는 케이팝이 (여전히) 새로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임을 확인하는 데에도 있다. 이 놀라운 신인의 데뷔를 꼭 기억해야 함은 물론이다.
선정위원 미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