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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근

2012 공로상
2012
Korean Music Awards Winner
winner공로상
대한민국의 재즈사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거인이 하나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활동했던 몇몇 전설적 연주자들을 뒤로 한 채, 그는 꿋꿋이 제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음악인들을 길러냈다. 작곡가, 이론가, 교육자, 그리고 프로듀서인 이판근(1934~). 한국 전쟁 직후, 마산상고와 서울상대에 재학하던 시절 독학으로 재즈를 익힌 이판근은 미 8군 무대를 통해 연주 경험을 쌓았고, 1950년대 말부터 많은 동료와 후배들을 규합해 한국 재즈의 여명기를 열었다. 색소폰 연주자로 출발했던 이판근은 베트남 전쟁으로 국내 미 8군 무대가 급감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클럽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던 시절 베이스로 악기를 바꾸었다. 1960년대, 팝 음악에 밀려 재즈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고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외국으로 떠나거나 방송국을 기웃거렸다. 사회적으로 한국 재즈의 암흑기라 일컬어지던 1970년대에 그 명맥을 지켜낸 것이 바로 이판근이다. 오늘날 중진으로 손꼽히는 절대다수의 연주자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또한 그다. 한국 재즈의 본격적인 첫 앨범으로 기록된 [재즈로 들어본 우리 민요, 가요, 팝송](1978)에서 편곡을 담당했고 [박성연과 재즈 at the Janus Vol.1](1985)에 실린 곡의 대부분도 그의 연주와 편곡으로 완성됐다. 1985년, 이판근은 연주를 접고 곡 작업과 후진 양성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이판근이 없었다면 오늘날 강태환, 최선배, 신관웅, 정성조 등의 명인들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정원영, 김광민, 한충완, 이정식, 윤희정, 임인건, 전성식, 유성희, 조윤성 등도 그를 통해 재즈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후진양성이 재즈계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태관과 김종진, 포크 가수 박학기, 영화음악가 조성우를 비롯해 심수봉, 인순이, 윤수일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가수들까지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지금까지 그를 사사한 이들의 수는 약 3,000여명에 이른다. 이판근의 삶은 1950년대부터 이어온 한국 재즈의 맥과 호흡을 같이 한다. 특히 그는 20여 년 전부터 국악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병행하며 한국형 재즈의 정착에 헌신해왔다. 다만 그가 만든 무수히 많은 곡들이 아직 미발표로 남아 있던 탓에 세상은 그의 묵직한 존재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지난 2010년, 소장파 연주자들로 구성된 ‘이판근 프로젝트’가 [A Rhapsody in Cold Age]를 발표하며 이판근의 곡들을 현대적인 어법으로 재구성했다. 이 앨범은 제 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 음반으로 선정됐다.
선정위원 김현준
아티스트이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