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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2018 공로상
2018
Korean Music Awards Winner
winner공로상
이장희, 사건의 아티스트 이장희, 그는 몇 차례의 사건이다. 그는 늘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1970년대 초, 콧수염을 기르고,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남자가 홀연히 나타났다. 누군가를 지목하듯 거침없이 “그건 너!”라고 노래했다. 뒤이어 “마시자! 한 잔의 술”이라고 외치며 술을 마시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감정도 여과 없이 발산했다. 전설적인 오리엔트 프로덕션 나현구 사장, 이곳의 전속 밴드인 동방의 빛(강근식·조원익·이호준·유영수)과 빛나는 시너지를 발휘해서 만든 이 ‘유신시대 금지곡’들만으로도 그의 공로는 충분하다. 다양한 스타일의 주옥같은 곡들을 만들어 직접 부른 일, 혹은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현경과 영애, 임희숙, 정미조, 이숙 등 동료 가수에게 곡을 선사한 일은 숨은 공로일 것이다. 그 공로 때문인지 그는 1975년 겨울, 불현듯 사라졌다. 1970년대 말, 그는 훵키 록 밴드 사랑과 평화의 ‘배후 인물’로 슬며시 나타났다. 가명을 사용한 이 작곡가이자 제작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림자만 보였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던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얘기할 수 없어요> 같은 품격 있는 ‘댄스 음악’이 그의 작품이었다. 스스로 프로덕션을 차리고 음반을 제작한 그의 휘하에는 사랑과 평화 외에도 김현식, 최성원, 김태화, 정원영, 김수철 등 1980년대를 수놓을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기꺼이 긴 줄을 섰다. ‘1980년’이라는 그 이상한 시간만 없었다면 그는 꽃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한 법. 1980년 가을, 그는 석연치 않게 또다시 사라졌다. 1988년 봄, 그는 또 돌아온다. 그가 없는 동안에도 방미(<주저하지 말아요>), 우순실(<꼬깃꼬깃해진 편지>), 임병수(<사랑이란 말은 너무 너무 흔해>)가 부르는 곡들에서 일상적 구어체를 절묘하게 담은 가사, 버스와 코러스를 확연히 구분되는 작법 등을 통해 그의 자취를 느낀 사람들은 이제 조용필과 김완선의 곡들에서 그의 활동을 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지난 두 차례 사건보다 더 짧았다. 그는 본인의 노래 제목처럼 ‘잊혀진 사람’이 되어갈 것만 같았다. 간간이 태평양 건너 들려오는 소식만 있을 뿐. 2011년 그는 다시 나타나 이번에는 ‘인생의 멋’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울릉도는 나의 천국>을 그의 최고작들 가운데 하나에 포함시키든 말든, 음악인의 노년이 이렇게 멋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 자체가 또 하나의 공로가 아닐까. 이장희의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을 손꼽는 목록들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이러한 목록들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큰 이유다. 그렇지만 이제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삶과 업적은 그런 목록을 초월해있다고.
선정위원 신현준
아티스트이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