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의 음반
단편선 순간들 [음악만세]
음악은 어떻게 만세를 누리는가.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의 예술은 음악인들이 기꺼이 내어놓은 삶 위에서 불멸을 누린다. 그 공을 높이 평가받아 희생에 합당한 보상을 누리는 이들이 있지만, 대다수 음악가는 만세는커녕 천세, 백 세조차 누리지 못한다. 창작의 길은 고되고 생존을 위한 투쟁은 지난하다. 그럼에도 영원을 꿈꾼다. 베테랑 인디 음악가 단편선이 [음악만세]에 담은 이야기다. 인생을 걸어보자는 거창한 포부의 록 밴드 대신 느슨한 조직체 순간들을 결성한 그는 이 세계를 차분하게 바라본다. 어떤 의미에서든 ‘음악을 하는’ 모든 이들을 관조한다. 멋모르고 잡았던 악기와 미디어 속 빛나는 음악가들에 대한 동경으로 덜컥 음악을 시작했던 원초적인 열정, 굳은 결심이 새어나가는 가운데 누수를 막아내려 안간힘을 썼던 흔적, 꽃처럼 피어나고 바다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음악에 대한 경외심을 숨기지 않는 [음악만세]는 그 음악의 번제를 자처하며 함께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든 이들을 격려한다. 우아하고도 처절한 인간 찬가다. 음악이여 영원하여라! 거룩한 예술을 위해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축복하고 승리를 거머쥔다.
선정위원 김도헌

올해의 노래
aespa 'Supernova'
2024년을 되돌아봤을 때, 수많은 아티스트 중 에스파(aespa)만큼 괄목할 만한 활동을 이룬 이는 손에 꼽을 만하다. 두 장의 앨범과 여러 히트곡, 월드 투어, 방송 활동까지. 이 모든 것이 한 해에 이뤄졌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다. 그리고 그 시발점에 'Supernova'가 있다. 헤비하고 공격적인 베이스를 필두로 차지게 공간을 울리는 비트, 성난 사운드로 일관하는 신스 등등, 수십 겹의 폭발적인 트랙이 쌓이며 강력한 추진력을 주조한다. 곡이 끝날 것만 같은 순간에 등장하는 변주 또한 탁월하다. 일렉트로닉 팝으로 일관하던 프로덕션은 트랩의 특징을 이식해, 리드미컬한 비트를 더욱더 증폭한다. 보컬 운용 역시 눈에 띈다. 서로 다른 음색의 보컬이 끊임없이 빠르게 소리를 주고받도록 구성하여 곡에 어울리는 속도감을 끌어낸다. 기복 없는 네 멤버의 합도 상당하다. 물론 우주를 주제로 한 영리한 가사와 명징한 멜로디도 빼놓을 수 없다. 'Supernova'의 성공이 단순히 에스파가 발매했기 때문이라고 납작하게 바라보긴 어렵다. 이처럼 음악적으로 탁출한 결과물이 있었기에 대중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자연스레 빛나는 성과를 이룩했다. 'Supernova'는 "감히 건드리지 못할" 2024년의 단 하나의 노래다.
선정위원 장준영

올해의 음악인
이승윤
이승윤이 폐허를 딛고 꿈의 거처를 발돋움 삼아 뛰어오른 세상은 슬프게도 어리석음과 어지러움의 향연이었다. 역성이 끊이지 않고 의심과 힐난하는 말들로 가득한 시국, 시절 인연을 받아들인 음악인은 절망의 계절을 강렬하게 관통하는 용맹함으로 음악을 발화한다. 지난 몇 년간 콘서트장과 페스티벌을 광분하며 날뛰던 야생마였던 그는 밴드 붐의 주역이 되었고, 이제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분노의 외침을 쏟아내고자 3집 [역성]을 발표했다. 30호, 이름이 궁금한 가수에서 음악 자체가 더욱 궁금한 사람이 된 이승윤은 어느덧 곡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견고하고 단단한 자신의 이름을 깊이 세긴 성벽을 완성했다. 휘몰아치는 정치적 격변기, 얼굴 가득 어리석음과 굶주림으로 들어찬 욕망의 병리에 휩싸인 사람들 사이에 이 성벽은 진정성이란 이름으로 꼿꼿이 자리 잡아 거대한 저항이 되었다. 어느 때보다 마음이 궁핍하고 황폐하며 용기를 잃기 쉬운 메마른 세상이다. 우리가 올바른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그의 올바른 분노와 포효가 필사적으로 우리 곁에 울려 퍼지길 바라며 이승윤을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한다.
선정위원 조혜림

올해의 신인
산만한시선
지난 한 해를 대표하는 신인으로, 예년처럼 대형 히트곡을 낸 이름도, 유난히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이름도 분명 있었다. 그와는 거리가 있는 산만한시선의 음악에 여러 선정위원이 주목한 건 진솔한 노래가 지닌 단순한 미덕에, 그것이 주는 힘과 감흥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일 거다. 어렵지 않고 또박또박 귓가와 입가에 은은하게 남는 좋은 선율과 가사, 노래와 잘 붙는 편성과 반주, 여기에 수록곡의 한 제목(‘미온’)처럼 차가운 현실에 제 몸의 온기를 나누며 기어이 미지근한 온도를 만들어내는 착함이 곡마다 묻어 있다. 다섯 곡을 수록한 데뷔 EP는 온전히 같은 구성이 연이어지지도, 노래의 시선과 온도가 산만하게 흩어지지도 않아, 한 작품으로서 고민이 충분히 담겨 있기도 하다. “우리의 가난과 아픔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면 예쁠 거라”고 고백하는 첫 곡부터 여느 평범한 삶의 터전(‘성두빌라’)을 삶과 노래에 대한 성찰로 채운 마지막 곡까지. 앞서 일상에서 예술을 피워낸 선배 포크 장인들처럼, 이들의 관찰과 감수성이 보편의 모습으로 소화하고 확장하는 걸 한동안 즐겨 귀 기울일 것 같다.
선정위원 정병욱